고양이 집사로 산다는 것

직장인 집사와 직장인 집사를 둔 고양이의 삶

December 11, 2018 - 3 minute read -
Ca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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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동물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동물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께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냐고 여쭈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인 “나중에 독립하면 키우렴” 덕분에, 나에겐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내 손을 거치는 족족 죽어나가는 식물들을 봤을 때, 나는 반려 생명체를 키우면 안 되는 운명일 거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을 무렵, 문득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가족과 같이 살다가 갑작스럽게 혼자 보내게 된 시간은 처음에는 편안하고 자유로웠지만, 이내 찾아온 건 외로움과 허전함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친구와 하우스쉐어링 중이었고, 친구가 고양이를 입양하면 나비탕(!)을 끓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에 차마 고양이를 입양 받을 수는 없었다.



기쁘다 주인님 오셨네

같이 살던 친구가 입대하고, 혼자 자취를 시작했지만, 섣불리 고양이를 입양 받기는 또 쉽지 않았다. 집고양이의 기대수명은 10년에서 14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10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내가 반려동물이란 책임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문득 결심이 서다가도, 막상 길거리에서 사람 손길을 탄듯한 길고양이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다가 친구가 보내준 학교 커뮤니티의 입양 글을 보고 지금 주인 놈에게 푹 빠져버렸다. 5개월 된 쪼끄만 녀석이 주둥이는 하필 뾰족해서 너무나 이쁜 것 아닌가! 게다가 입양 보내지는 이유도 “식탐이 너무나 큰 나머지 원래 키우던 고양이의 사료를 자꾸 뺏어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매력적인 성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사료값이 많이 나갈 걸 알아챘어야만 했다!) 하룻밤을 꼬박 고민하다 다음날 부랴부랴 모셔왔다.



초보 집사라 미안해

처음에 우리 집에 온 고양이는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 꼬박 이틀을 쉬지도 않고 울었다. 달래도 보고, 간식을 종류대로 사다가 줘도 거들떠보질 않았다. 5개월 갓난애를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와 단둘이 뒀으니 무서웠을 법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입양을 보내신 분이 초반에는 화장실이며 캣타워, 사료까지 전달 및 설명을 해주신 덕분에 한결 나았던것 같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훨씬 더 힘든 집사 입문기가 되었을 법하다.



직장인 집사와 직장인 집사를 둔 고양이의 삶

아침에 일어나면 발치에서 주인 놈이 자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자다가 뒤척이면 알아서 자리를 비키던 놈이, 최근엔 짬이 좀 찬 건지 이불을 좀 달라고 당겨도 꿈쩍도 안 하고 버틴다. (내 돈 주고 산 이불이야!). 그래서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은 내 몫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아침 배급을 한다. 사료를 밥그릇에 우수수 쏟고, 물을 찰랑찰랑하게 담아준다. 아차, 주인 놈은 창문 밖을 보는걸 좋아하니, 창문도 열어두고, 밤에 방안이 차갑다고 소리를 지르는걸 듣기 싫다면 까먹지 말고 보일러도 뜨끈뜨끈하게 켜두도록 하자.

저녁에 퇴근하면 우렁찬 울음소리로 집사를 맞는 주인 놈이 현관에 나와 있다. 얼른 쓰다듬어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자.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손에는 송곳니 자국으로 딱지가 앉을 것이고, 팔모가지는 피투성이가 될 것이다.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면 선반에 숨겨둔 간식을 하나씩 꺼내 바치자. 내가 먹는 간식보단 비싸지만 뭐 어떠랴, 이 집의 주인이신데 말이다.



고양이도 외로움을 탑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고양이는 개와 다르게 외로움을 타지 않는 동물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이는 틀린 말이다. 반려견을 키워 본 적은 없으므로 정도의 비교를 할 순 없겠지만, 고양이도 분명히 외로움을 타는 생명체들이다. 아무리 고양이들이 영역동물이며 실내에 있는 걸 개의치 않는다곤 하지만, 혼자 24시간 넘게 혼자 놔두는건 추천하지 않는다.

가끔식 미안하게도 외박을 하고 다음날 오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있는데, 이때 주인 놈은 한 시간씩 날 가만히 앉혀놓고 쓰다듬을 것을 요구한다 (나도 야근하고 와서 피곤하다고!). 지금 글을 쓰는 옆에 꼭 붙어서 그릉그릉 대는 주인 놈에게 미안할 따름이다.